가생활문화 3장 한국의 가정생활문화-삼국 고려 — 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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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2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정생활 문화 세
- 0:05번째 시간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가족
- 0:08생활 문화에 대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 0:11갖도록 하겠습니다.
- 0:14학습 목표입니다. 한국 가족생활
- 0:17문화의 시대별 변화 과정을 설명할 수
- 0:19있다. 혼인 거주 상속 제사를
- 0:22중심으로 시대별 가족 문화의 차이를
- 0:25비교할 수 있다. 우선 학습 목표를
- 0:27이렇게 잡았는데 사실 이런 혼인과
- 0:30거주, 상속, 제사까지 아주 디테일한
- 0:33부분은 다루는 건 아니라는 점.
- 0:35간단하게 시대별로 가족 문화의 차이가
- 0:37있다.이 정도로만 이해하시면 좋을 것
- 0:39같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조선
- 0:42후기 되어서 이런 부 중심적인 가족
- 0:45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 0:48있다. 이렇게 학습 목표를 잡아
- 0:50보았습니다.
- 0:52학습 내용입니다. 고대 가족 생활
- 0:55문화로서 비부계적 문화의 특성을 갖고
- 0:57있고 서혹 등의 혼인과 거주 형태를
- 1:01띄고 있다는 점. 여성도 상속이
- 1:04가능했다라는 점. 균분 그까 동일하게
- 1:09재산을 나누었다. 유산을 동일하게
- 1:11나누었는가? 여부는 사실
- 1:14불분명합니다.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 1:16여성도 상속이 가능했다라는 점. 어
- 1:19고려 시대 들어서는요.
- 1:22혼인과 처가 중심 처가 거주 중심의
- 1:25생활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우리가
- 1:28그거를 서류 부가호이라고 합니다.
- 1:30그리고 여손 계사와 윤회봉사가
- 1:33있는데요.
- 1:35어 서류 부가호 같은 경우에는요.
- 1:38결혼을 한 다음에도요. 친정에서
- 1:41살다가 나중에 시집으로 가는 제도를
- 1:44서류 부가호이라고 합니다. 에서 처가
- 1:46중심의 생활문화가 형성되었다.
- 1:49여성계사 같은 경우는요. 말하자면
- 1:52후계자가 없어요. 그럼 유산이
- 1:55자손이의 타인에게 흘러가는 것을 막기
- 1:57위해서 남자 자손이 없는 경우에
- 2:00여손에게도 가게 계승이 개능하다.
- 2:03가능하다라고 해서 이걸 우리가 여손
- 2:06계사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 2:09윤회봉사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 2:11말하자면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를
- 2:15남자와 여사 상관없이 돌아가면서
- 2:17지냈다라는 것입니다.
- 2:20다음으로 저정기 가족 생활 문화가
- 2:23있습니다. 성리하게 기반한 유교적
- 2:25가족 질서의 제도화가 되었고요.
- 2:28여성의 주제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 2:30내배법이라던가 과부제가 금지법이
- 2:33있습니다.
- 2:35흔히 말해 내외법은 우리가 부부
- 2:37유별, 남녀분별 이런 말을 하잖아요.
- 2:40그래서 남자는 바깥, 여자는
- 2:42안이라는이 생활 영역이 형성되는
- 2:45것입니다. 그다음에 과부제가 금지법은
- 2:48과부에 대해서 다시 제가 결혼하는
- 2:51것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 2:54조선 후기 들어서는 이런 성격이 훨씬
- 2:56더 강화되는데 장자 중심에 재산
- 3:00상속과 제사문화가 정착되었으며
- 3:03혼인과 거주 방식의 변화 인해서
- 3:05여성의 가족내 지위가 약화되게
- 3:07됩니다. 오늘은 이런 내용에 대해서
- 3:10간단히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 3:12하겠습니다.
- 3:15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여러분에게
- 3:17질문을 하나 해 보겠습니다. 전통적인
- 3:20한국 가족의 모습은 어떤
- 3:22모습이었을까요? 자, 1번 결혼하면
- 3:26여성이 남편 집으로 간다. 2번
- 3:28재산은 장남이 주로 상속한다. 3번
- 3:32제사는 장남이 담당한다. 4번 자녀는
- 3:36아버지의 집에 속한다.
- 3:39어,이네 가지 전부 다
- 3:42맞나요? 틀린가요? 사실이네 가지는
- 3:45어, 우리의 전통문화라고 오해할
- 3:47가능성이 있습니다.
- 3:50마치 그렇다고 여겨지죠. 그러나 실제
- 3:52확인해 보면 생각보다 글이 오래되지
- 3:56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보시는이
- 3:58내용들은요. 조선호기 이후에 조선
- 4:01후기 이후에 강해진 것입니다. 그럼이
- 4:04내용에 대해서 하나하나 우리 한번
- 4:06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4:10가족은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하게 되는
- 4:14원 가족이 있고 혼인을 통해 새롭게
- 4:17형성되는 생식 가족이 있습니다.
- 4:20본장에서는 혼인을 중심으로 가족의
- 4:23생활 문화를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 4:26크게 고대 즉 3국과 통영신 시대랑
- 4:30고려 시대 조선 시대로 나누어서 각
- 4:33시기의 가족 문화 특성을 살펴보려고
- 4:36합니다. 다만 한국의 고대 사회 같은
- 4:39경우는 자료가 제한되어 있어서 가족
- 4:42및 친족 연구 역시도 상당히
- 4:45제한적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 4:47있습니다. 따라서 연구 자체도 상당히
- 4:50단편적이며 성과도 극히 제한적이라고
- 4:54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 4:56전제한 상태로 한국의 가족 생활
- 4:59문화를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
- 5:02혼인은 우리가 일반적으로요
- 5:06배우자 수에 따라서 크게네 가지
- 5:08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자
- 5:11여러분들 혼인의네 가지 유형 어떤
- 5:13유형들이 있을까요?
- 5:15첫 번째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
- 5:17같은 일부 일처제가 있습니다. 그죠?
- 5:22자, 1부 1차제는 어떻습니까? 1부
- 5:251차제는
- 5:26배우자와 처가
- 5:29각각 한 명인 경우죠. 다음으로
- 5:33일부 다 처재가 있습니다. 그죠?
- 5:37남편이 한 명이고 처가 여러 명인
- 5:39경우죠. 세 번째는 뭘까요?
- 5:431처
- 5:45다부제 그죠?
- 5:47처는 한 명, 아내는 한 명이지만
- 5:50남편이 여명인 경우입니다. 마지막네
- 5:53번째는요.
- 5:56바로 집단혼 형태입니다. 집단끼리
- 5:59결혼을 하는 배우자가 여러 명인
- 6:01경우를 말하는 거죠.
- 6:03자, 그래서 보면 어, 동양권에서는
- 6:07근대 이르기까지 말하자면
- 6:11일부 1처재 일부 다처재 같은 것들은
- 6:15쉽게 발견되는 유형이라고 볼 수
- 6:18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부권이
- 6:21강해지면서 귀족을 중심으로 일부
- 6:24다천재가 일반화되었고 한국에서도
- 6:28기적층 같은 경우에는 일부 다처제가
- 6:31성행하기도 하였습니다.
- 6:34근데 우리 생각해 보면 있잖아요. 어
- 6:36드라마나 이런 걸 보더라도 왜 약간
- 6:38되게 그 회장님들 회장님들은 배우자를
- 6:43여러 명 흔히 말해 처벌 두는 경우가
- 6:45있지 않습니까? 어 그러면이 그
- 6:48기업에 종사하시는 분을 귀족이라고 할
- 6:50수 없으나 아 이런 습관들 좀 생활
- 6:53문화도 특성이 남아 있다. 우리가
- 6:56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 6:57무승개 소리 한번 이야기해 봅니다.
- 7:00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어때요? 애정에
- 7:03기초한 남녀 두 사람의 결합을
- 7:06이상적인 형태로 삼고 있죠. 그래서
- 7:09일부 일처세입니다.
- 7:12그들의 가족 배격이나 사회 경제적인
- 7:14지위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 7:17갖고 있지 않아요. 그러나 전통
- 7:20사회에서는요.
- 7:21우리는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 7:24것들보다 훨씬 복잡한 어 말하면
- 7:27가족의 배격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가
- 7:29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7:32발견할 수 있습니다. 혼인 당사자인
- 7:35남녀 두 사람의 애정이 강조되는 것이
- 7:38아니라 그들 가까이 속한 가족 집단,
- 7:41더 넓게는 친족 집단이 중요시되고
- 7:44혼인은 바로이 집단 간의 결혼을
- 7:47의미하게 됩니다.
- 7:49그래서 전통 사회의 혼인은
- 7:52인류 인류학자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 7:55진짜 진정한 의미의 혼인이라기보다는
- 7:57혼인 동맹에 가깝다라고 보고
- 8:00있습니다.
- 8:02혼인 동맹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 8:04혼인은 이와 관련된 두 집단의 새로운
- 8:08관계를 창조한다든가 아니면 기존의
- 8:12관계를 다지는 의미를 갖는다라고 볼
- 8:15수가 있습니다.
- 8:18자, 그렇다면 고대 상국 시대와
- 8:21통영실라 시대의 가족 문화에 대해서
- 8:23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8:26보대 한국 사회에서 혼인은 개인적
- 8:28결합이 아니라 공동체가 승인한 사회
- 8:31제도로 기능하였습니다.
- 8:33혼인규범은 습속에서 관습으로 다시
- 8:36법으로 발전하면서 가족 질서를
- 8:39유지하는 장치가 되었고 간음은 단순한
- 8:42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 질서를
- 8:45파괴하는 범죄로 인식되어 엄격한
- 8:48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 8:50여성의 정절 이념은 혼인질서를
- 8:53안정시키기 위한 도덕적 제도덕 장치로
- 8:56작동하였습니다.
- 8:59송정 선생님 등은 삼국사기나 상국
- 9:01유사에 나타난 사례들을 보면 무게가
- 9:04우월한 특성이 있지만 모기 역시도 큰
- 9:07비중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 9:09있으며 신라 시대에는 왕위 계승에서
- 9:12아들과 사위 친손과 외손 사이에 큰
- 9:15차이가 없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9:19더 나가서 이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 9:21이기숙 교수님 등은 상국 시대나
- 9:24통일신라 시대의 가족은 비부기적
- 9:26문화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 9:29먼저 고구려 시대의 가족 문화에
- 9:31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고구려 왕실의
- 9:34경우 이처를 둔 왕이 일곱 명이
- 9:36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부
- 9:38다처제의 특성이 있었다고 볼 수
- 9:40있습니다. 또한 전처가 사망한 후
- 9:43취한 두 처를 모두 개실이라고 한
- 9:46점을 보아 두 처 모두 정실로 인정된
- 9:49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두 처간의 지위
- 9:52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 9:55고구려 유리왕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 9:58황조가의 배경서를 살펴보면
- 10:01왕에게는 화이와 치위의 두 왕비가
- 10:03있었으며 두 여성 사이의 갈등으로
- 10:06치가 궁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 10:09이러한 기록은 고구려 왕실에서 복수의
- 10:12배우자 구조가 존재하였을뿐만 아니라
- 10:15왕실 여성들 사이에서도 지와 영향력을
- 10:18둘러싼 경쟁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 10:21시사합니다.
- 10:22고구려 왕위 계승은 원칙적으로 부에서
- 10:25자로 이어지는 부자 계승의 형태를
- 10:28보이지만 아들이 없는 경우 보통 왕의
- 10:31형제가 왕위를 개승하지만 손자가
- 10:34왕위를 개승한 사례도 드물게
- 10:36보입니다. 또한 왕위 계승이 반드시
- 10:39장자에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 10:42대표적으로 9대 고국 천천왕과 13대
- 10:45서천왕의 사례를 보면 장자가 아닌
- 10:48왕자가 지기한 사실을 확인할 수
- 10:50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 10:53출생 순위에 따라 우선적 계승 권한이
- 10:56주어졌다고는 볼 수 없으며 여러 아들
- 10:58중 능력과 자질면에서 더 뛰어난
- 11:01아들에게 왕위 계승을 준 것으로
- 11:04이해할 수 있습니다.
- 11:07고구려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 11:09가서 혼인식을 올리고 생활을 하며
- 11:12자녀를 낳아 성장한 후에 여자를
- 11:15데리고 남자 집으로 오는 생활을
- 11:17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 11:22다음은 백제입니다. 백제의 혼인
- 11:24제도는 왕실과 일반 사회의 양상이
- 11:27구분되어 나타나는데요.
- 11:29왕실일차원에서는 왕비 1인을 중심으로
- 11:32후궁이나 복수의 부인이 병존하는 일부
- 11:36다처적 운영이 확인되는데 삼국사기
- 11:39백제 본기에는 서로 다른 모개의
- 11:42왕자들이 정치사 속에 반복적으로
- 11:44등장하여 정비 체제 아래에 후궁이
- 11:48존재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11:50이러한 왕실 혼인은 단순히 개인적
- 11:53결합이라기보다는
- 11:54귀족 가문간의 결속과 대회 외교
- 11:57관계를 공고의 하기 위한 정치역
- 12:00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12:02특히 외국 남조와의 외교 관계 속에서
- 12:06혼인이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 12:09하였습니다.
- 12:11최재석 교수님은요. 백제의 경우
- 12:13다철한 왕이 있으며 1처와 2처 또는
- 12:17처와 첩의 지위 차이는 그다지 없었을
- 12:20것이로 예측된다고 하였습니다.
- 12:23예측된다고 하였습니다.
- 12:26백제의 왕위 계승은 기본적으로 부에서
- 12:29자로 이어지는 부자 계승의 형태를
- 12:31보입니다. 다만이 경우 장자가 왕위를
- 12:35개승하는 것은 아니며 그렇지 못한
- 12:38경우 둘째 아들 등에게도 왕위가
- 12:40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왕에게
- 12:43아들이 없는 경우 형제나 같은 왕족
- 12:46집단의 방귀 인물이 왕위를 계승하는
- 12:49사회도 확인됩니다.
- 12:51예를 들어 7대 사반 이후 주기한
- 12:548대 고의왕은 사바왕의 아들이 아니라
- 12:575대 초구왕의 형제로 이해되며이는
- 13:00왕위 계승이 반드시 직의
- 13:02부자관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 13:05보여줍니다. 이와 같이 백제의 왕위
- 13:08계승은 원칙적으로 부자 계승으로 부자
- 13:11계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정치적
- 13:14상황이나 왕종 내부의 세력 관계에
- 13:17따라 형제 계승이나 방계승이
- 13:19이루어지는 등 비교적 유연한 계승
- 13:22구조를 보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
- 13:25있습니다.
- 13:27반면 일반 사회의 기본 혼인 구조는
- 13:29부부 한쌍을 중심으로 한 일부 일차적
- 13:33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이해되고
- 13:35있습니다. 유남상에 따르면 백제는
- 13:38초기부터 3사를 바탕으로 원시 유교적
- 13:42예의 사상을 계승하였고
- 13:45한 대학술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 13:49은양 오행 등 경학적 논리에 의하여
- 13:51오경을 중심으로 한 백제 유학을
- 13:54전제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백제는
- 13:57고구려 백제와는 달 다소 상의한 혼인
- 14:01문화를 가졌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 14:04투서 동의전의 백제조에 혼인하여
- 14:07아내를 취하는 의뢰가 중화와
- 14:09비슷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비슷한
- 14:11것으로 보아
- 14:14백제 고유의 혼속이 다소 융합된
- 14:16형식이 있는 것으로 예측되고
- 14:18있습니다. 백제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 14:21중국식 친영가 행해진 것으로 보
- 14:24보이며 서류 부가운의 여부는 사료가
- 14:27부족해 신라나 고구려만큼 확정적으로
- 14:30말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던
- 14:33시대와 같은 엄격한 유교식 가래가
- 14:36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기보다는
- 14:39혼인이 가문간 결합과
- 14:42제사 상속 질서를 유지하는 의뢰적
- 14:44기능을 점차 강화해 가는 과정에
- 14:47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14:50또한 백제의 친족 구조는 부를
- 14:52중심으로 정비되어 가는 경향을
- 14:55보이면서도 초기에는 양계적 요소가
- 14:58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과도기적 특성을
- 15:01지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 15:04고구려 소제와 같은 명확한 처가 거주
- 15:07제도는 두드러지 않았으며 점차 남성측
- 15:11거주가 일반화되는 흐름이 나타납니다.
- 15:14이러한 점에서 백제의 혼인 제도는
- 15:16규범적으로는 일부 일처를 근간으로
- 15:19하되 왕실과 상층 사회에서는 정시적
- 15:23필요에 따라 복수의 배부 배우자를
- 15:25두는 일부 다처가 제한적으로 허용된
- 15:29구조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15:32백제의 경우 신라나 고려와 고구려와
- 15:35달리 분쟁기나 법정과 같은 1차
- 15:38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상속
- 15:40규범과 실제을 구체적으로 보원하는
- 15:43데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고구려의
- 15:46서제 신라에서 확인되는 사이와 외손의
- 15:49처가거주 등 여성측 친족 집단이 혼인
- 15:52이후에도 중요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 15:55유지했음을 우리가 예측해 볼 수
- 15:57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확인되는
- 16:00백제 관련 사례와 해설은 제도
- 16:03전반이나 노비의 상속 방식 등에
- 16:05대해서는 언급되고 있으나 남녀간
- 16:08상속분의 차이나 여성의 상속권의 법적
- 16:11지위를 구체적으로 전하는 자료는 거의
- 16:14없어서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 16:17특성이 있습니다.
- 16:19다음은 신라입니다. 신라 왕실에서도
- 16:23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왕비회의 후궁이나
- 16:27복수의 부인이 존재했던 사례가
- 16:29확인됩니다.
- 16:31상국사기 신라 본기에는 왕비 외의
- 16:33부인과 그 소생 왕자들이 정치적 계승
- 16:37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이는
- 16:40왕실 차원에서 일부 다쳐적 혼인이
- 16:43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지능왕대회는
- 16:47정비 1인을 중심으로 후궁이
- 16:48병존하였으며 복수의 목단에서 왕비
- 16:52왕자들이 배출된 점이 왕시대의 일부
- 16:55다처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할
- 16:58수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경문왕
- 17:00대회에도 왕비 외 후궁의 존재가
- 17:03확인되며 서로 다른 모개의 왕자들이
- 17:06정치사에 등장하는 양상은 정비 1인
- 17:09체제 아래 복수의 배우자가
- 17:11병존하였음을 보여줍니다.
- 17:14다만처의 경우 외에도 다처의 명칭을
- 17:17버리고 차비라고 부르는 경우랑 소비,
- 17:20후궁으로 부르는 경우, 첩 혹은 천첩
- 17:23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으로
- 17:25보아서 처 간의 차이는 존재했을
- 17:29것으로 보입니다.
- 17:31또한 기본적으로 신라는 골품제라는
- 17:35제도가 존재하잖아요.
- 17:38엄격한 신분질서 속에서 혼인이 단순한
- 17:41개인적 결합이 아니라 정치적 현적
- 17:44연합의 수단으로 가능하였기 때문에
- 17:47왕실과 진골 귀족에서는 복수의
- 17:50배우자를 통해 세력 결속이
- 17:52용인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 17:55신라 시대 왕실의 혼인은 동성혼
- 17:57경향이 지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8:01최지석은 최지석 교수님은 이성간의
- 18:04혼인이 22살례인데 반해서 동성관의
- 18:07혼인은 무려 38살례나 된다고
- 18:10지적하면서
- 18:13신라 왕실에서는 내혼 즉 동성혼을
- 18:16이상적인 혼인 유형으로 받아들였다고
- 18:19보고 있습니다. 또한 왕위 계승과
- 18:22관련하여 1대 시조가 혀세였잖아요.
- 18:25혀세는 박혀세로 박신인데 반하여
- 18:284대왕은
- 18:29석탈해 이사금이잖아요. 탈해 이사금은
- 18:33이대 남의 남의 왕의 딸 아루와
- 18:36혼인한 인물로 혼인을 통해 왕실과
- 18:39연결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반면 5대
- 18:42왕은 3대 유리왕의 아들인 파사
- 18:45이사금 박시로서 박씨의 왕통이
- 18:48이어졌습니다.
- 18:50또한 13대 미추 이사금은 김시
- 18:52출신으로 11대 조항의 사이로 알려져
- 18:56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신라의
- 18:59왕위 계승은 원칙적으로는 부자 계승의
- 19:01원칙을 보이긴 하지만 반드시 이에
- 19:04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없는
- 19:07경우는 사위나 친손, 외손 등 다양한
- 19:10방식의 계승이 이루어진 것으로
- 19:12이어되고 있습니다.
- 19:14다만 일부 다처가 신라 사회 전반적인
- 19:18혼인 규범이었다라고 보기는
- 19:20어렵습니다.
- 19:22삼국사기 및 여러 금성문 자료를
- 19:24종합하면 일반 사회에서는 부부 한상을
- 19:27기본으로 하는 일부 일차적인 혼인
- 19:30구조가 중심을 이루었던 것으로
- 19:32이해되고 있습니다. 다만 신라는 다른
- 19:35상국에 비하여 근친의 사례가
- 19:38두드러지는데이는
- 19:40일부 다처와는 다른 맥락에서 골품제
- 19:43유지와 현통 보존을 위한 정치적 혼인
- 19:46전략의 일환이었다고 평가될 수
- 19:48있습니다.
- 19:50또한 신라의 혼인문화는 단순한
- 19:52부괴심적 구조라기보다는 양계적 친적
- 19:55요소를 일정 부분 유지하고 있었던
- 19:58것으로 보입니다. 최재석 교수님은
- 20:01신라 시대의 경우 왕위 계승에 있어서
- 20:04자와 서, 내손과 외손 간의 차이가
- 20:06없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 20:09왕위 계승 과정에서 외송과 사이의
- 20:12위상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는 점은
- 20:15고대 한반도 사회가 완전한 부괴 단성
- 20:18구조로 고착되기 이전에 친족 체계를
- 20:21반영하는 특징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 20:24따라서 슬라의 혼인제도 역시
- 20:26기범적으로는 일부 일처를 기본으로
- 20:28하되 왕실 및 상층 귀족 사회에서는
- 20:32정치적 연합과 골품 질서 유지를
- 20:34목적으로 복수 배우자를 두는 일부
- 20:38다처가 제한된 제한 제한적으로 허용된
- 20:41구조였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20:45또한 혼인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은
- 20:47신라 중대에 이르서 왕실이 성골이
- 20:50아닌 진골 출신으로 이어지면서
- 20:53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정당성을
- 20:56확보하기 위하여 유고의 예제적 요소를
- 20:59활용하고자 하였던 사실입니다.
- 21:02또한 신라의 경우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 21:05자유의 특성이 있었던 것으로
- 21:06보입니다. 예를 들어 김유신의 부모인
- 21:09서영과 만 명은 길에서 만나 서로
- 21:12마음에 들어 눈치스럽 깨어 중매를
- 21:14거치지 않고 결합하였다고 전해지고
- 21:17있습니다. 선하 공주의 경우 소동료의
- 21:20주인이 되는 바람에
- 21:22귀양을 가다가 도중에 서동을 만나게
- 21:25되는데
- 21:27마음이 당기고 좋아 따라오게 하여
- 21:29남몰래 관계를 맺은 뒤에야 소동이라는
- 21:32이름을 알았다는 구정이 구절이
- 21:34등장합니다.
- 21:36이후 선화공주는 소동을 따라 백지로
- 21:38가게 되는데
- 21:40이제 동침과 같은 실질적인 결합이
- 21:43전제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 21:45있습니다. 나아가 김선주 선생님은요.
- 21:49신라시대 혼인이 대부분 동숙에
- 21:52비중을 둔 자유로운 결합으로
- 21:54이루어졌으며 이후 신랑측 가문이이를
- 21:58수용하면서 공식적인 부부 관계가
- 22:00형성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56,
- 22:036세기 신라 시대에 만든 토장식
- 22:05목항아리를 보시면 자 여러분이
- 22:08화면에서 보시는 자료입니다. 임신부가
- 22:11가양 부금을 타는 모양, 성교를 하는
- 22:14모양 등의 토가 장식이 되어
- 22:16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 이런 것을
- 22:18볼 때이 남녀간의 결합이 좀
- 22:21상대적으로 비교적으로 좀 개방적이고
- 22:24자유롭지 않을까라는 사실을 예측해 볼
- 22:26수 있습니다.
- 22:28또 흥미로운 점은요. 신라시대
- 22:30신문왕의 태잡이었던 왕비 김 씨는
- 22:34오랫동안 아들이 없었어요. 아버뿐만
- 22:38아니라 아버지의 반란은 연류되거든요.
- 22:40그래서 쫓겨났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 22:43왕비 김씨가 출된 이유는 두 가지로
- 22:46볼 수 있는데 첫째는 왕인를 개승한
- 22:49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 22:51아버지의 반란 때문으로 보입니다. 뭐
- 22:54어쨌거나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다는
- 22:57이유로 출근되는 사례가 처음이라는
- 23:00점에서
- 23:01이러한 무자, 자식이 없음으로 인한
- 23:03이혼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고 보기는
- 23:06어렵습니다.
- 23:09신라 사회에서 여성이 아이를 낳지
- 23:11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이적으로
- 23:14축출되었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며 다만
- 23:17왕실과 기저충에서는 왕위 계승이라는
- 23:21정치적 필요에 따라 왕비 교체나 후궁
- 23:24증대가 나타나기는 하였습니다. 신라
- 23:27시대에는 여성도 재온이나 이혼이
- 23:29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의
- 23:31설라를 살펴보면 효자에 대한 표창을
- 23:35표창이 많긴 한데 연려에 대한 표창은
- 23:37나타나지 않는다.이를 근거로 볼 때
- 23:40과부의 제원이 허락되었던 것으로
- 23:42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 23:45왕실에서 공주가 제원한 사례가 있으며
- 23:49대표적으로 신라의 고승 원요화 태종
- 23:52무열왕의 딸 요속 공주가 있습니다.
- 23:54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발로
- 23:57바로 신라의 위대한 유학자이자 이들을
- 24:00정리한 설총입니다.
- 24:03이문홍욱님 따르면
- 24:06신라의 친족 구조와 혼인 제도는
- 24:08단선적인 부 중심 체계로만 설명하기는
- 24:11어렵다고 합니다. 왕위 계승은 부괴를
- 24:14원칙으로 하긴 하지만 왕비 개보와
- 24:17외손 계승 사례에서 목계적 요소가
- 24:20병존하였으며 상황에 따라 부개와
- 24:23모게가 교체하는 이중 출계적 성격이
- 24:26관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 24:29신라 27대 왕인 선도왕은 신라
- 24:31최초의 여성군주이자 그다음 진도왕은
- 24:34두 번째 여성 군주가 됩니다.
- 24:37선덕왕은 최초의 여성군였기 때문에
- 24:40왕권의 정통성을 지속적으로 보강하기
- 24:42위해 불사를 통해서이 불교 행위를
- 24:46통해서 왕권의 정당성과 국가 안정을
- 24:49모색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이 이
- 24:51불사를 통해서 왕은 하늘이요 불법의
- 24:55보호를 받는다라는 상징성을
- 24:57강화했으며이는
- 25:00그다음 군주인 진덕왕이 증기할 때
- 25:03정치적으로 저항을 완하는데 뒷받침이
- 25:05되었습니다. 신라시대 여성의 왕위
- 25:09계승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 25:12성골 남계의 단절이라는 혈통 구조의
- 25:15위기 속에서 나타난 가족질서에 대한
- 25:17특수한 대응이었습니다.이는 이는 신라
- 25:20사회가 부의 중심질서를 유지하면서도
- 25:23모게 및 근친 혈통의 정통성을 일정
- 25:27부분 인정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 25:30수 있습니다. 나아가 왕실 여성은
- 25:33단순한 혼인 대상이 아니라 형 혈통
- 25:36정통성과 제사 계승의 매개로
- 25:39기능하였으며 이러한 상징적 위상은
- 25:43신라 가정 구조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 25:47또한 혼인은 개인간 애정 결합을 넣어
- 25:49넘어 친족 집단간의 동맹을 형성하는
- 25:52사회적 장치로 기능하였으며 동숙과
- 25:55같은 선결합 후승인 방식의 자유혼적
- 25:59요소도 확인됩니다.
- 26:01이러한 점에서 신라의 가족과 혼인
- 26:04제도는 혈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정치
- 26:08사회적
- 26:09조직 단위로 작동한 복잡한 구조로
- 26:12이해할 수 있습니다.
- 26:16다음은 제사와 재산의 상속에 대한
- 26:18내용입니다. 삼국사기 시조묘나 아니면
- 26:22신궁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 26:25역대왕들 즉 석지왕이나 김시왕들 모두
- 26:30박시성을 가진 혀커세의 제사를
- 26:32거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는
- 26:35이는 신라의 왕위 계승에서도 말해
- 26:37주듯이 시조 혀세를 중심으로 아들,
- 26:40딸, 친손, 사이, 외손이라는
- 26:42관점에서 제사를 지냈음을 의미하며
- 26:46따지자면 아버지 쪽 조상과 어머니 쪽
- 26:49조상을 차별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 26:51있습니다. 그래서 시조면은 시조를
- 26:54모신 묘, 신당 같은 걸 말하고
- 26:58신궁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 27:00말합니다.
- 27:04왕위 계승이나 제사를 지에 있어서
- 27:07남녀간에 엄청나게 큰 차별이 존재하지
- 27:10않았다라고 지금 저희가 얘기를 하고
- 27:12있잖아요. 자, 따라서 이러한 원리는
- 27:15당연히 상속에도 영향을 미치게
- 27:18됩니다. 상속에서 아들 딸 모두
- 27:21상속받을 자격이 있었으며 당시
- 27:24여성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또한 경제
- 27:28활동이 가능했음을 전제한다는
- 27:30것입니다.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
- 27:32재물이나 토지 노비를 소유하였는지를
- 27:36밝혀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없어요.
- 27:38그러나 여성이 경제권을 행사했다는
- 27:41사실은 불교 사원의 재물이나 토지를
- 27:44시주했다는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 27:47있습니다.
- 27:48예로서 옹주가 자신이 소유한 토지와
- 27:51노비를 시했다는 기록이나 사비로
- 27:55사찰를 창건하거나 불상을 조종한
- 27:57사례들을 통해서 여성이 부모로부터
- 28:00상속을 받았거나 남편 사후에 재산을
- 28:03물려받는 경우로 출론해 볼 수 있을
- 28:05것입니다. 토지를 소유하거나 절에
- 28:08시주하는 것은 일반 백성 특히
- 28:10여성들도 가능했습니다. 살아서 여성
- 28:13자신이 크든 작든 상속에 의해 재산을
- 28:16가질 수 있었고 그 재산을 마음대로
- 28:19처분하는데 별다른 규제는 없었던
- 28:21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상속 재산
- 28:24다시 말하면 토지나 노비의 배분이
- 28:27자녀 모두에게 균분한 균분하게
- 28:30나누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는다는 것.
- 28:35그리고 일반 백성의 상성 원리는
- 28:37왕시의 사례 사례로 미루어진할 수
- 28:40있을 뿐입니다.
- 28:42다만 당시 혼인 풍속이었던 서류
- 28:45부가의 영혼으로 처 외전히
- 28:49중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상속 여시
- 28:52역시 아들딸 차별 없이 균 상속이지
- 28:55않았을까로 우리가 예측하고 있습니다.
- 29:01다음은 고려 시대의 가족 문화입니다.
- 29:04고려 시대의 혼인과 가족 문화는
- 29:06통일신라의 전통을 일부분 계승하면서도
- 29:10국가 체제의 변화와 유교 관료제의
- 29:12정착에 따라 점진적인 재편을 보인
- 29:16시기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려
- 29:18사회에서 혼인의 기본 단위는 여전히
- 29:20부부 한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 29:23혼인은 개인간 애정보다 가문간 결합과
- 29:26사회적 지위의 조정이라는 성격이 좀
- 29:28더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 29:31왕실과 문벌 귀족 등에서는 정치적
- 29:33연합과 세력 균형을 위해 혼인이
- 29:36전략적으로 활용되었고
- 29:38일반 사회에서도 혼인은 친족 집단간의
- 29:41연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사회 제도로
- 29:43기능하였습니다.
- 29:46혼인의 성립 방식은 통일신라의
- 29:48자유혼적 요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 29:51가운데 중매와 예물 교환 가문 승인
- 29:54절차가 점차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 29:57됩니다.이는 유교적 예제의 수용과
- 30:00더불어 가문의 체면과 신분질서를 유지
- 30:04신분질서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 30:07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조선
- 30:09시대처럼 엄격한 예법이 사회 전반을
- 30:13지배한 것은 아니며 지역과 계층에
- 30:16따라 관습의 유연성이 여전히
- 30:18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 30:21거주 형태는 고려 가족 문화의 중요한
- 30:24특징 중에 하나인데요. 초기 고려
- 30:26사회는 서류 부가원이라 불리는 처가
- 30:29거주제가 비교적 일반적이었고 사회가
- 30:33일정 기간 처가에 머물며 머무르며
- 30:36생활하는 방식이 널리 관찰되고
- 30:38있습니다.이는 여성의 친족 집단과
- 30:42지산권이
- 30:44일정 부분 존중되었음을 보여주는
- 30:47지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 30:49흐르면서 점차 남성 중심에 부의
- 30:52거주가 확대되었고 특히 후기에는
- 30:56가문의 계승과 재산 관리의 효율성을
- 30:59이유로 남성측 거주가 증가하는 경향이
- 31:02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고려가
- 31:05고대 양계 가족 구조에서 점차 부계
- 31:08종신 구조로 이동하는 과정을
- 31:10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 31:13고려 후기 좋은이
- 31:16확산되는 경향성이 보입니다. 1을
- 31:18설명하는 요인으로는 원 간섭 기식이
- 31:21공려 징발의 영향을 지적하는 견해도
- 31:24존재합니다.
- 31:26원가의 관계 속에서 고려의 젊은
- 31:28여성들이 공려로 선발되어 원날래로 보
- 31:31보내지는 사례가 반복되자 일부
- 31:34가문에서는 딸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 31:36혼인시키거나 약혼 상태를 약혼 상태를
- 31:39두어 징발 대상에서 제외되기를
- 31:42기대하였다는 해석입니다.
- 31:45이러한 현상은 조으니 단순한 가문
- 31:47전략을 넘어 외교 정치적 환경이 가정
- 31:51생활과 혼인 연령에까지 영향을 미친
- 31:53사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 31:56공려 제도가 고려 전 시기에 걸쳐
- 31:59지속적으로 보편적 지속적 보편적으로
- 32:02존재했던 제도는 아니며 조언 역시
- 32:05지역과 계층에 따라 차이가
- 32:07존재하였습니다.
- 32:09따라서 고려 사회 조언을 전적으로
- 32:11공려 징발의 결과로 단정짓기보다는
- 32:14문벌 귀족 중심의 신분질서 유지
- 32:17전략과 외부 정치환경이 복합적으로
- 32:20작용한 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보다
- 32:23타당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32:29고려 시대 이혼은 처가 칠거지에
- 32:31해당되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 32:34행해졌지만 더 많은 경우는 남편이
- 32:37일방적으로 철을 버리는 기처였습니다.
- 32:41사이도 장인의 공에 따라 음나
- 32:44공음전의 특해를 받는 당시 상황에서
- 32:47부잣집이나 세력가의 딸을 아내로 맞는
- 32:50것이 여러모로 유리했던 남편의 의도가
- 32:52표출되어 나타난 현상이 기차였으며이는
- 32:56사회 전반에 빈번하게 발생하였다고 할
- 32:59수 있습니다.
- 33:01음서라는 것은 관료의 자손들에게
- 33:05관직에 진출할 특권을 주는 제도이며
- 33:08공음전 전은 이제 밭이잖아요. 그래서
- 33:11관료에게는 세습 가능한 토지를
- 33:13지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 33:16부잣집이나 세력가의 딸을 아내로 받는
- 33:19것이 유리하다 보니까 남자들이 여사여
- 33:22대우자를 버리는 기차 현상이
- 33:24발생했다는 것이죠.
- 33:27하지만 이것이 법적으로는 제한이
- 33:29심하지 않았으며
- 33:31부모와 의논하지 않고 철을 버리는
- 33:34경우 처벌한다는 조항이 고려사에
- 33:36기록은 되어 있었지만 다시 말하며
- 33:39부모가 인정하면 언제든 철을 버릴 수
- 33:42있다는 있다고 해석될 소지도 있기
- 33:44때문에 이런 법적 규제가 영향을
- 33:47가졌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33:51정군단나 고려는 재온이 금지된 사회가
- 33:54아니었기 때문에 처리를 버리는 것에
- 33:56대한 부담감이 훨씬 약했을 것으로
- 33:59짐작됩니다.
- 34:01재혼은 여성에게도 가능했으므로
- 34:04이혼녀들 역시도 별다른 제재 없이
- 34:06재운을 하기도 했다는 점. 다만 혼인
- 34:10자체가 부모의 주관하에서 행해진다는
- 34:12점을 고려할 때 재혼의 자유는 오히려
- 34:15여성을 정약혼의 도구로 만드는 도구적
- 34:18측면이 다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34:21정리해 보면 고려의 혼인 제도는 서류
- 34:25부가나 재온처럼 여성에게 유리한
- 34:27측면도 있지만 부적이면서도 양변적인
- 34:31성격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34:34철로서의 지위는 불안했고 재온에 대한
- 34:37규제나 수 장려 등 측면을 보여주기도
- 34:40하였습니다. 그러나이 당시 가능했던
- 34:44일부 제도만을 근거로 조선 시대와
- 34:46비교하여 여성이지가 높았다 이렇게
- 34:49평가하기는 좀 무리가 있다라는
- 34:51의견들이 존재합니다.
- 34:55자, 제제사와 재산의 상속 여손 계사
- 34:59그죠? 어 이제 고려 사절 요에는요.
- 35:03무릇 백성은 적자로 후계를 세우되
- 35:06적자가 없으면 적손이 적이 없으면
- 35:08동모제가 동모제가 없으면 소손이
- 35:11남손이 없으면 여손이 후사를 세우도록
- 35:15허약한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따라서
- 35:18여손 계사라는 것은 후계자가 없는
- 35:22경우 유산이 자손 이해의 타인에게
- 35:25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지막
- 35:27남성이 없으면 가계 계승이 여성에게
- 35:32여손에게 인정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 35:37고로시대는 친덕 구조 자체가 좀
- 35:39비부기적이었기 때문에 상속도 남녀
- 35:44균인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 35:47상속받을 재산에는 노비나 토지 등도
- 35:49존재되었으며 딸의 상속보는 시집간
- 35:53뒤에도 남편의 재산으로 흡수되지 않고
- 35:56자기의 몫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 36:00혼인한 여자의 노비는 그녀의 자손이
- 36:02없이 죽었을 때 일단 남편이
- 36:05소유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 36:08뒤에는 친정의 자손에게 돌려 주어야
- 36:10하였습니다.
- 36:12따라서 상속에서 딸은 자식으로서
- 36:14일정한 권리를 가졌으며 당연히이는
- 36:17윤회 봉사랑 연결됩니다.
- 36:20고려 시대에는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 36:22외손자가 제사를 지낼 수 있었는데요.
- 36:25적장자에게 제사가 계승되지 않았으면
- 36:28않았으며 무엇보다 불교를 전적으로
- 36:31숭배했기 때문에 절에서 제사를
- 36:33지냈습니다. 따라서 형제나 자매들이
- 36:36돌아가면서 돈을내어 불사를
- 36:37주관하였습니다.
- 36:39윤회봉사는 남녀 균 상속이 행해졌던
- 36:42고려 사회의 특성과 잘 부합되는데
- 36:46가게 존속에서 아들의 존재가
- 36:48절대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 36:51양자의 역할은 거의 미미했습니다.
- 36:54상속과 재단에서 고려시대 여성은 아들
- 36:57못지 않은 역할을 하였으며 가족
- 36:59문화는 상대적으로 남녀 차별이
- 37:01심하지는 않았다라고 볼 수가
- 37:03있습니다.
- 37:06원래 어 조선 시대까지 끝냈어야
- 37:09됐는데 아 강의를 녹음하다 보니까
- 37:12시간이 좀 애매해서 좀 잘라야 될 것
- 37:15같습니다. 어 그러니까
- 37:18조선 시대는 조금이어서 하도록
- 37:20하고요. 어떤 부분은 좀 강의 시간이
- 37:23좀 늘어날 수도 있는데 어 그럼
- 37:25요거만 조금 얘기하겠습니다. 우리가
- 37:27계속 이게 고려 시대는 서류 부가혼을
- 37:30얘기하잖아요.
- 37:33근데 그러면 조선 시대의 서류
- 37:35부가원이 갑자기 생뚱 맞게 튀어났냐?
- 37:37아니죠. 이삼국 시대에는
- 37:41어 서옥제라는 제도가 있었다라는
- 37:43거죠. 서옥제라는 것은 신랑이 신부집
- 37:47뒤에 서옥에서 일정 기간 머무르면서
- 37:51혼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 37:54그죠? 그래서 아예 집이 있으면 이제
- 37:57처가이 있으면이 집 뒤에다가 여기서
- 38:01서을 짓고 이게 사위가 사는 거예요.
- 38:04그러면서 가족 관계 형성되는
- 38:06것이다.이 서류후 부 서류 부가오는
- 38:09여러분 그런 말 들어봤죠? 그 대릴
- 38:12사위제
- 38:14어
- 38:16대일 사위제의 학술적 표현입니다.
- 38:18대릴 사위제의 뭐 반대말이 약간
- 38:22반대말이라고 해야 될까요? 뭐
- 38:23민면느리 이런게 있는 거죠.
- 38:27음. 민며느리는 사실 어린 나이에
- 38:30며느리를 들여서 가사 양육에
- 38:32참여시키는
- 38:34관습으로서 조선 시대에 많이 활용됐던
- 38:37제도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 38:38그러니까 상당히 가부장적 특성이 높은
- 38:42제도라고 볼 수가 있겠죠. 그러나
- 38:45서류 부가오는 뭐예요? 처가게
- 38:47들어가서 사위가 일정 기간 거주하는
- 38:50것이다. 처가되게 거주했다. 근데
- 38:53이게 말하면 또 이렇게 말하는 부분도
- 38:55있습니다. 여성을 데려오잖아요. 그럼
- 38:58여성이이
- 39:00집에서 기하는 노동력이 있는데
- 39:02결혼하면 사라지잖아요. 그니까
- 39:04그러니까 남편이 와서이 목소리를 메꿔
- 39:07놓고 나간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뭐
- 39:10있긴 합니다. 해서 상국 시대는
- 39:13서지라는게 있었고 고려 시대는 대릴
- 39:16사위제 즉 서류 부가운 제도가
- 39:18있었다.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 39:21남성과 여성의지가 상당히
- 39:24동일했다라고 보는 어렵지만 여성의지가
- 39:27상당히 높았으며 자연스럽게
- 39:30여자도 손을 이을 수 있었으며 재산을
- 39:33칠 수 있었고 그다음에 당연히 재산도
- 39:36나눌 수 있었다. 그죠? 그러다
- 39:38보니까 당연히 재산을 나누다 보니까는
- 39:41제제사도 함께 지내고 돌아가면서 돈을
- 39:44기부했다. 저다까 우리가 이렇게 볼
- 39:47수 있습니다.
- 39:50네.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 39:52민망하긴 하지만 오늘 우린 여기에
- 39:54대해 고대 가족 생활 비계적이었다.
- 39:58서제와 같은 이제 처가 중심적인 여성
- 40:02중심적인 결혼 제도가 좀 있었다.
- 40:04여성도 상승이 가능했다. 그 이것들이
- 40:07고려 시대에서도 당연히 서류
- 40:09부가혼이라는 어떻게 보면 되게 서제랑
- 40:12유사한
- 40:13대릴 사위제가 존재했다.
- 40:17당연히 여성도 손을 이을 수 있었으며
- 40:20손을 입기 위해선 당연히 재산이
- 40:22분배됐다. 어느 정도 균분하게
- 40:24이루어지는 특성이 있었으며 재산을
- 40:26받으니까 뭐예요? 제사를 지내는 것도
- 40:30돌아가면서 했다. 그러나 고려 시대는
- 40:32불교 중심의 제사였기 때문에
- 40:35자연스럽게 절에다가 기부를 하는 형태
- 40:37오늘 하여튼 우리가 맞게 지내는
- 40:39형태는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알 수
- 40:41있겠습니다.
- 40:44그죠? 어, 다음 시간에는 가정
- 40:46준리와 예의 생활을 해야 되는데 우선
- 40:49조선 시대를 학습한 다음에이 부분까지
- 40:51함께 다룰 수 있도록 노력해 보도록
- 40:53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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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ge contains the full transcript of 가생활문화 3장 한국의 가정생활문화-삼국 고려 by jongsoo, generated from the public captions YouTube serves with the video. The transcript has 3,840 words across 873 segments, with the original timestamps preserved so you can click any line to jump to that moment in the embedded 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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